RFP 기준상 '15bp' 불가피, 업계 평균치 한참 밑돌아
공기업 채권 폐단 우려도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한국도로공사가 한국물(Korean Paper)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업계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수수료를 제시하도록 유도해 눈총을 받고 있다. 맨데이트(권한)를 받기 위해서는 최저 수수료를 적어낼 수밖에 없도록 구조를 설정해 저가 수수료 경쟁을 부추긴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로고
[촬영 임성호]

 

한국도로공사의 '짠물 수수료'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상생 경영과 동반성장의 가치를 앞세우는 공기업이 수수료 후려치기에 앞장서면서 시장 질서를 저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5bp 적어야 만점, 도로공사의 수상한 평가 기준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도로공사는 최근 달러화 채권 발행을 위한 주관사단 선정을 마쳤다. 주요 하우스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고 평가를 진행해 맨데이트를 부여했다.

도로공사 평가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짠물 수수료 논란이 일고 있다. 주관사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업계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수수료를 적어내도록 해 시장 전반의 질서를 흐트러뜨렸다는 비판이다.

한국도로공사는 100점 만점 중 20점을 수수료 항목으로 설정한 것은 물론, 관련 평가 산식을 공표했다. 해당 산식상 20점을 받기 위해서는 수수료로 '15bp'를 제시해야 한다. 통상 공기업 달러채 수수료율이 25~30bp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균치에 턱없이 못 미치는 요율이다.

더욱이 이외 항목에서 개별 하우스 간의 차등을 크게 두지 않았던 터라 수수료 부문의 비중이 더욱 커졌다. 배점을 비교적 높게 설정한 국제 신용등급과 해외 채권 주관 실적은 각각 A 등급, 5억달러 이상이기만 하면 만점에 해당한다. 이에 마케팅 역량 등의 정성 지표(20점)와 수수료(20점)가 중요해졌다.

사실상 맨데이트를 받기 위해서는 15bp를 적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로 RFP를 발송했던 셈이다. 통상 RFP에 수수료 평가 산식이 등장하는 게 흔치 않은 데다 이를 통해 산출된 요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에서 도로공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

물론 발행사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일종의 비용으로 여겨지는 만큼 절감 등에 방점을 둘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수수료 후려치기는 결국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수료율 하락이 확산할 경우 글로벌 IB의 투자 감소 등으로 시장 전반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발행사가 겪을 유무형의 손실 또한 커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몇몇 발행사는 수수료와 주관 역량 간 상관관계를 인지하고 지나치게 낮은 요율을 적어내면 도리어 감점하기도 했다"며 "한국물은 국외 발행물이라 해외 시장과 견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요율을 깎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주관 업무의 질적 저하와 IB 시장 위축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캥거루본드 사태 재현, 시장 왜곡 앞장

한국도로공사의 짠물 수수료 논란은 과거에도 반복됐다는 점에서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2020년 캥거루본드(호주 달러 채권) 발행 당시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저가 수수료를 유도했다. 당시에는 산식상 17~18bp 수준의 요율을 제안해야 최고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캥거루본드 주관 이력이 미미한 하우스들이 맨데이트를 받으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이듬해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유사한 방식으로 저가 수수료를 유도해 비판받았다. 당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첫 달러채 발행물이었던 데다, 도로공사와 마찬가지로 수수료 점수 평가 산식을 제시하는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도로공사가 참고 지표가 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퍼지기도 했다.

사실상 도로공사의 수수료 욕심이 시장 전반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린 셈이다. 이어 올해 또다시 달러채 주관사 선정에서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공기업으로서의 시장 조성 역할 등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는 모습이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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