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한용 기자 = 삼성전자에서 최초로 여성 부사장이 배출되는 등 올해 삼성그룹 임원 승진 인사에서 이건희 회장의 여성 인재 중용론이 크게 반영됐지만, 금융계열사에선 여풍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삼성 금융계열사가 이 회장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서도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14일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전일 임원인사를 통해 여성 인력을 과감히 승진 조치했다.

심수옥 삼성전자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이 회사의 첫 여성 부사장이 됐고 삼성전자의 김기선 부장, 송효정 부장 등 역대 최대인 8명의 여성이 상무로 승진했다.

심 부사장은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을 제외하면 제일기획 최인아 부사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부사장으로,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 여성 부사장이 배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성그룹 내부에서 여성 파워가 거세지고 있지만, 금융계열사에선 박경희 삼성증권 부장이 상무로 승진한 것이 올해 유일한 여성 임원 승진 사례였다.

지난해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자산운용 등 금융계열사를 통틀어 2명만이 임원으로 승진했다.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 여성 임원 승진 사례가 드문 이유는 기본적으로 승진 대상인 부장급 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계열사는 발탁 인사를 해도 4~5년 후에나 내부에서 여성 임원 승진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보험계열사는 업종 특성상 분쟁 등 거친 업무가 많아 아직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강한 점이 여성 임원 배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금융계열사는 아직 여성 보직 부장이 많지 않다"며 "특히 보험분야에선 영업 부담 등으로 과거 여성들의 업계 진출이 많지 않았던 점이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 안팎에선 금융계열사들이 성장 측면에서뿐 아니라 그룹 수장의 비전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도 제조업계열사들에 밀리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이전 삼성전자보다 많은 매출을 올렸던 삼성생명이 이후 매출과 당기순이익 등 실적에서 삼성전자에 크게 뒤처지게 된 데 많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성장성과 관련한 이런 고민은 삼성생명뿐 아니라 다른 금융계열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게 조직 안팎의 분석이다.

이번에 금융계열사들이 이 회장이 던진 여성 인재 발탁이라는 화두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이 회장은 금융계열사들이 가진 한계를 더욱 절감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열사들이 여성 인재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시대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지 못했고, 과거 눈에 띄지 않았던 이런 문제점이 이 회장의 여성 인재 중용론 제기로 드러났다.

금융계열사들의 성장 정체는 그 기저에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돼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한편, 이 회장은 올해 8월 서초동 사옥에서 여성 임원들과 오찬을 하면서 "여성이 임원으로 끝나서는 자신의 역량을 다 펼칠 수 없을 수도 있어 사장까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지속가능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여성 임원의 비율을 1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현재 삼성전자의 전체 임원이 1천여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10년 후 삼성전자에는 100여명 이상의 임원이 포진하게 된다는 의미다.

h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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