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우리나라 증시가 작년 3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요동친 후 1년간 급반등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변한 점은 연기금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는 점이다.

연기금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주요 투자 주체였지만 시장의 방향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가가 급락할 때 때때로 저점 매수에 나서며 안전판 역할을 할 뿐 강세장에선 대체로 시장의 주목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년은 사뭇 다르다. 증시가 급반등 과정에서 연기금은 자산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주식을 줄기차게 매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증시 상단을 제한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됐다.

국내 시장 규모보다 덩치가 너무 커 이른바 '연못 속 고래'로 불리는 연기금이 결과적으로 박스권을 설정하며 연못을 휘젓는 양상인 것이다.

연기금의 매매 방향이 증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수치가 말한다.

연기금은 코스피가 1,439까지 급락한 작년 3월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286억원, 4월에는 1조5천356억원 어치 주식을 순매수하며 증시 반등을 이끌었다. 3월에는 월간 기준 낙폭을 마이너스(-) 27.56%에서 -11.69%까지 줄이며 한 달을 마쳤고 4월에는 10.99%의 상승을 이끌었다.

이후 연기금은 작년 5월 5천142억원 순매수를 마지막으로 매도 우위로 돌아섰지만, 코스피가 3,000선에 이르기 전인 작년 12월까지는 매도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연기금의 누적 순매도액은 8조1천707억원으로 월평균 1조1천672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연기금은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한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매도 드라이브를 걸면서 연못을 휘젓기 시작했다. 기존 7개월 누적 순매도액과 맞먹는 8조646억원어치의 매물을 1월에 던지며 증시 상단을 억제했고 투자심리가 꺾인 코스피는 석 달째 3,000~3,200 사이의 박스권에서 횡보하게 된 것이다. 올해 1분기 국민연금의 누적 순매도액은 12조3천841억원에 이른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이 얼마나 팔았느냐 못지않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언제 매도 규모를 늘렸냐는 것"이라며 "단순히 자산 비중 조절 차원이라면 연기금이 작년 하반기에 걸쳐 순매도한 만큼의 물량을 1월 한 달 만에 쏟아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1월 코스피가 3,200마저 돌파하자 연기금이 월간 순매도액을 대폭 늘렸는데 이는 증시가 과열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투자심리를 진정시키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며 "연기금은 저점 매수로 증시 하방을 방어하듯 어느 정도 과열도 막는 시장 조정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 연기금으로 잡히는 자금의 약 90%는 국민연금 자금으로 알려졌다. 결국 연기금의 매도세가 둔화하려면 국민연금의 전체 포트폴리오 내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까지 줄어야 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5월 발표한 '2021~2025년 국민연금 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안'과 '2021년 국민연금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25년까지 국내주식 비중을 15%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올해 목표치는 이보다 높은 16.8%지만 국내주식 비중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작년 1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내 국내주식 비중은 21.2%다. 올해 1분기에 12조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국민연금이 목표치를 맞추려면 연말까지 30조원가량의 매물을 추가로 쏟아내야 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현재 중기 자산 배분 계획은 코스피 2,000 박스권 시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코스피 시가총액이 2천조원에 이른 상황에서 시장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국내주식 투자 전략을 변경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중장기 계획을 심의하는 투자정책전문위원회 단계에서 국내주식 자산 배분안을 재검토한 뒤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면 향후 기금운용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전략을 바꾼다면 단순히 매도 목표액이나 오차 허용범위를 조정하는 것보다는 중기 자산배분 계획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하는 게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국내주식 비중을 조절하게 되면 다른 자산군의 비중도 바뀌는데 그러려면 자산운용의 큰 틀을 우선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운영 계획상 '2022~2026년 중기자산배분(안)' 수립 중간보고는 오는 4월 회의로 예정돼 있다. 국민연금이 내부 검토를 어느 정도 끝낸다면 4월 기금위 회의에서 해당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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