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책위 아닌 기금운용본부 차원에서 논의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의 선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LG는 이번 주총에서 LG상사 등 일부 계열사를 분할해 신설 지주를 설립하는 안건을 상정했는데 주요 외국계 의결권 자문사는 이를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다. 회사 측 지분 자체는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지만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결정에 따라 이번 사안은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26일로 예정된 LG의 주총을 앞두고 기금운용본부 내에서 계열 분리 안건을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행사해야 할 때 외부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안건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심의를 맡긴다. 통상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거나 사안이 중요할 때 수탁위가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LG 계열 분리 건은 수탁위가 아닌 본부 차원에서 의결권이 논의되고 있다.

수탁위 관계자는 "LG 계열 분리 안건은 수탁위로 넘어오지 않았다"며 "수탁위는 26일 회의를 열어 10개 기업의 안건을 심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LG 기업 분리 안건에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의결권 자문사들도 글로벌 기관들은 반대를 권고한 반면 국내 자문사는 찬성 의견을 내며 의견이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국민연금이 이번 안건에 반대하면 LG의 기업 분할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기업 분리 안건은 특별결의 사안이다. 주총을 통과하려면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및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대 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은 LG 지분의 45.89%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7.81%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율은 35% 수준이다.

LG 측 지분만 놓고 보면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요건은 충족한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가 모두 반대하고 나선다면 나머지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져 LG의 기업 분할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LG 계열 분리 건에 반대를 권고한 것은 LG 측을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글로벌 자문사들의 의견과 보조를 맞추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LG 계열 분리 안건에 대해 "사업상 정당성이 결여돼 있고 가장 중요한 이슈인 자산관리 및 순자산가치 저평가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며 "분할 후 주식 교환은 가족 간 승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세계 2위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도 이번 분할 건에 대해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LG의 지분 1% 미만을 보유한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는 이미 앞서 이번 분할 건에 반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반대 권고가 나온 뒤 이를 반긴다는 성명도 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해외 의결권 자문 기관에서 LG 기업분할 안건에 반대 의견을 권고함에 따라 주총에서 통과 여부 자체가 불확실해졌다"며 "외국인 주주의 대부분이 의결권 자문 기관의 반대 의견을 따르고 국민연금까지 반대 의사를 결정한다면 인적 분할 안건은 주주총회를 통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최 연구원은 "통상 전체 주주의 주총 참석률은 60~70% 수준이나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하면 이는 70~80%까지 높아질 수 있다"며 "LG 기업분할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외 약 6~8%의 추가 우호 지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LG는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판토스, LG MMA를 인적 분할해 신설 지주 'LX홀딩스'를 설립하는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을 이번 주총에 상정한다. LG는 지난해 11월 이 같은 사항을 결정한 뒤 이번 주총에 안건으로 올렸다. 안건이 통과되면 LX홀딩스는 오는 5월 1일 출범한다.

LX홀딩스는 사실상 구본준 LG 고문이 일부 계열사를 이끌고 LG그룹에서 독립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다.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고문이 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불편하게 동거하느니 서로 독립 경영하는 게 더 낫다는 그룹 차원의 판단이 깔려 있다. 분할 이후에는 구광모 회장과 구본준 고문이 서로 지분을 교환해 계열분리를 마무리하는 그림이 예상된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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