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권한 논란에 자체 손실 보상조치 반영된 듯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최고경영자(CEO)에게 강도 높은 징계를 통보했던 금융감독원이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수위조절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 시그널이 필요하다며 CEO의 무조건적인 책임을 강조했던 금감원이 금융회사의 현실과 향후 지배구조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톤다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일 옵티머스 사태 관련 부문검사 조치안을 심의한 제재심은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문책 경고'를 처분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수위는 ▲해임 권고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통상적으로 문책 경고 조치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되며 이 경우 향후 3~5년간 금융사 임원 선임이 제한된다.

당초 금감원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 대표에게 '3개월 직무 정지'를 통보했다. 중징계라는 범위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수위 자체는 한 단계 경감됐다.

올해 금감원 제재심에서 검사국의 의견을 위주로 사전 통보한 CEO 제재 수위를 낮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라임펀드와 디스커버리 펀드를 판 IBK기업은행 부문검사 조치안을 심의할 때도 김도진 전 행장에게 '주의적 경고'를 처분하는 데 그쳤다. 사전 통보과정에서는 중징계가 전달됐다.

당시 금감원 내부에서도 제재심에서 김 전 행장의 수위를 경감한 것을 두고 논란이 컸다. 중징계를 경징계로 선회한 것을 두고 윤석헌 원장의 질책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간 윤석헌 원장은 사모펀드 등 일련의 사태와 관련한 CEO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조해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사와 운용사, 수탁사 등을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잘잘못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어 검사·감독 등 주무 부서마다도 제재 수위에 대한 온도 차가 좀 있다"며 "내부통제 부실이란 이유로 CEO에게 도의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과 해당 제재가 미치는 결과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했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시작으로 중징계를 받은 CEO가 늘어가면서 제재 권한을 두고 금감원을 향한 비판이 거셌다.

현재 금감원장은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35조에 의거해 금융사 임원을 제재할 권한을 금융위원회로부터 위탁받고 있다. 이에 따라 내부통제 위반 등을 이유로 한 개인 제재의 경우 문책 경고 이하는 금감원장 전결로 처리해왔다.

이에 금융권에선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금감원장만의 결정으로 처분한다는 데 대해 꾸준히 불만을 제기해왔다. 실제로 DLF 사태로 문책 경고가 처분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당시 우리은행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당시 하나은행장)이 소송전에 돌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CEO들이 중징계 처분에 반기를 들면서 금융권에서 금감원 면이 서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만약 향후 중징계를 받게 된 CEO들도 선례를 따라 법의 판단을 받아 보려 한다면, 금감원으로선 더 큰 비판을 마주할 수 있다는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한 판매사들이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펀드에 대해서도 보상하는 등 적극적인 피해자 구제에 나선 것도 CEO 제재 경감의 주된 이유가 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라임펀드 관련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을 수용하고 신속히 배상금을 지급했다. 향후 분쟁조정위원회를 앞둔 신한은행, NH투자증권 등도 분조위 결과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CEO 개인 제재를 두고 달라진 금감원의 온도에 대해 금융권은 반기고 있다. 자칫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는 우려를 덜 수 있어서다.

현재 중징계가 사전 통보돼 제재심을 진행 중인 다른 판매사 수장들도 경감의 대상이 될지 관심사다. 라임펀드 판매사인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직무 정지,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문책 경고, 그리고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주의적 경고가 통보됐다. 이들에 대한 제재 수위는 내달 말께나 결정될 예정이다.

시중은행 임원은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 본질은 국내 금융회사가 단기수익을 위해 소비자 보호는 뒷전이었다는 점이고, 이미 많은 판매사가 구조적으로 개선했다"며 "불완전판매에 직접 연관된 임직원 징계는 불가피하나 도의적 책임을 이유로 CEO에 무조건적인 중징계를 고집하는 것은 제재 권한의 남용이다"고 주장했다.

이 임원은 "시장에 시그널은 충분했다고 본다. 앞으로 발전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CEO가 조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금융당국도 미래의 영업이나 이미지, 주가, 해외시장에서의 평판 등에 미칠 상관관계를 고려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jsjeong@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5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