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19일째 MOU 체결…"119 같은 시간이었다"

러트닉과 서른 번 가까이 협상…화상으로 악수·포옹 나눠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제가 오늘로 취임 119일째입니다. 대미 협상이 119 같은 시간이었는데 마무리되니 날짜가 공교롭게도 119일이네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4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이날 MOU 체결로 지난 7월 말 큰 틀에서 타결됐던 한미 관세 협상이 사실상 모두 마무리됐다.

 

한미 관세협상 관련 브리핑하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및 MOU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14 kjhpress@yna.co.kr

 

"대미 협상이 119 같았다"는 말처럼 김 장관에겐 절대 쉽지 않은 119일이었다.

전임 장관 때 시작된 한미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취임 직후 미국 출장을 떠나야 했다. 김 장관이 카운터파트인 러트닉 장관과 직접, 혹은 화상으로 얼굴을 마주한 게 서른 번 가까이 된다. 거의 나흘에 한 번꼴로 얼굴을 보고 협상을 이어온 셈이다.

특히 MOU에 서명한 이날도 화상회의를 했다.

김 장관은 "오늘 낮 12시20분쯤 러트닉 장관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다시 사무실에 복귀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냥 전화가 아닌 화상 전화를 하자고 하더라"며 "화상회의 할 때는 항상 목소리 톤이 올라갔던 터라 잔뜩 긴장한 채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미 정상이 공동으로 팩트시트까지 발표한 상황에서 갑자기 또 무엇을 문제 삼을지 걱정했지만 러트닉 장관은 자신이 MOU에 서명하는 모습을 '생중계'해주기 위해 영상통화를 건 거였다.

두 사람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사이에 둔 채 원격으로 악수하고 포옹까지 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전화를 붙잡고 그렇게 협상을 마무리 짓게 됐다"며 웃었다.

김 장관은 협상 과정에서 '왜 빨리 안 끝내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가 하고 싶었던 협상이 아니었던 만큼 버텨내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저도 그랬다"며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한 협상이 아니라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국내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협상할 때 위축되고 부담도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 한미 '3,500억 달러' 전략적 투자 합의 내용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4일 미국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함께 총 3천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총 3천5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는 2천억달러의 투자와 우리 기업의 직접투자(FDI), 보증, 선박금융 등을 포함한 1천500억달러의 조선 협력 투자로 구성된다. yoon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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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는 7월31일 관세 협상 데드라인을 앞두고 스코틀랜드에 갔던 때를 꼽았다.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은 급한데 정작 진도는 제대로 나가지 않아 걱정이 컸다고 한다.

러트닉 장관을 만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에 보유한 골프장 두 곳 중 한 곳으로 향하는데, 러트닉 장관이 다른 곳에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시간이 촉박해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차를 빌려 4시간 가까이 달려갔다. 하지만 약속했던 미팅 시간에 늦고 말았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이 초대한 건 아니지만 4시간 이상을 차로 왔다고 하니 인간적인 미안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덕분에 그날 협상을 2번 했다. 그때 우리가 여기(MOU) 나온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한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던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으로 꼽았다.

그는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며 "내리자마자 개인 SNS에 무언가를 올리면 어떻게 하나. 협상을 깨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일 초조하고 피가 마른 시간이었다"며 "심장이 마르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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