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등 한국 테크기업 분석한 베테랑 애널리스트

"메모리 업사이클 이제 시작…과거와는 다르다"

 

 

우동제(사이먼 우) 뱅크오브아메리카 한국 리서치센터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2000년대 초반, 강남 아파트가 비싸다는 평이 있었다. 당시에 적정가를 평가하던 게 지금 와서 보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대세 상승장에서 자산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꾸준히 오르게 된다. 코스피도 마찬가지다."

우동제(사이먼 우)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한국 리서치센터장은 18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코스피 전망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한국 제조업이 계속해서 재평가받을 환경에서 코스피 목표가 수준을 따지는 게 중요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우 센터장은 "코스피 5,000 또는 6,000 같은 전망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웬만한 국내 기업은 여전히 저렴하며, 미국 등 선진시장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제조업) 사업모델이 워낙 많기에 더 올라갈 여력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스피가 상승장 초입에 들어선 수준이라며 "글로벌 투자자가 한국 투자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한국 기업이 (더 비싸게 평가받는) 미국이나 대만, 중국 기업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동제 센터장은 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등 한국 테크기업을 분석한 베테랑 애널리스트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4년부터 동서증권에서 리서치를 담당했다. 이후 컨설팅업체 아서핸더슨과 현대증권을 거쳤고, 2003년에 메릴린치(현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류했다. 30여년간 테크 및 각종 산업 사이클을 체험해온 그는 '플레잉 코치'다. 한국 테크기업을 중심으로 리포트를 발간하면서도, 한국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테크 리서치 코디네이터도 그의 역할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른 메모리 사이클

올해 메모리 업사이클(호황) 기대감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연초 이후 현재까지 삼성전자는 87%, SK하이닉스는 240% 상승했다.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시장 관심사다.

BofA는 메모리 사이클이 이제야 초기 단계이며,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사이클이 초기 단계인 이유는 미국 외 지역으로의 인공지능 확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에서나 인공지능 투자가 활발했고, 다른 나라는 이제서야 소버린 AI를 강조하며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우 센터장은 "미국의 경우 시작 단계를 약간 벗어난 수준이며, 다른 나라는 미국에 비해 갖춘 게 없다"고 짚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사이클이 과거와는 다른 B2B(기업간거래) 사이클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30여년간 메모리 업계는 PC와 스마트폰 등이 촉발한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사이클에서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B2C 사이클은 경제상황과 교체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꺾이곤 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등으로 인한 B2B 사이클 때는 클라우드 기업이 반도체 재고를 지나치게 쌓아두는 바람에 사이클이 꺾였다.

이번 메모리 업사이클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선 빅테크를 대상으로 한 B2B 사이클이다. 과거 클라우드 때와는 다르게 빅테크가 쌓아둘 칩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우 센터장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공지능 쪽에서 필요로 하는 칩의 규모가 워낙 크기에 공급 부족이 이어질 확률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기성복 아닌 맞춤 정장…어쩔 수 없는 공급부족

메모리 공급부족 현상은 기술적으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게 BofA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메모리 업체간 공급경쟁 강도도 과거보다 약해졌다.

현재 메모리 시장에서는 기성복에서 수제 정장으로 무게추가 옮겨졌다. 과거의 메모리 사이클을 주도한 제품은 디램과 낸드플래시처럼 표준화된 범용 칩이었다. 지금 사이클을 이끄는 제품은 맞춤형 고품질 칩인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우 센터장은 품질 높은 HBM을 공급하는 게 까다로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램과 디램을 붙여서 만드는 HBM의 경우 어설프게 만들면 고객사가 큰 영향을 받는다"며 "잘못 만들어진 HBM을 탑재할 경우 고가의 인공지능 가속기도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HBM 제조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탓에 메모리 업체가 공급부족을 해소할 만큼 생산을 대폭 늘릴 수 없다.

메모리 공급업체간 증설 경쟁이 없다는 점도 이번 사이클의 특징이다. 과거 메모리 업체들은 공격적인 증설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치킨 게임'을 벌였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의 메모리 업체만이 살아남았고, 이들은 고객사의 공급 확대 요구에도 쉽게 응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업체들은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 가격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우 센터장은 "우리나라 업체끼리 경쟁하는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낮다"며 "치킨 게임을 해도 남는 게 없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업계가 경쟁적으로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 공급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이번 업사이클이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현물가격 과열…조정 오면 매수

앞으로의 메모리 업체 투자전략을 묻는 말에 우 센터장은 "조정 후 저가매수" 전략을 제시했다. 현재 사재기로 인해 과도하게 높아진 디램 현물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이 가격 하락이 주가 하락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게 BofA의 분석이다. 우 센터장은 "주식시장이 여기에 놀라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그때 더 주식을 사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자주 상대하는 우 센터장이 외국인으로부터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밸류에이션이다. 올해 크게 오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적당한 가격이냐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우 센터장은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정확한 경영 전략을 제시하면 과거보다 높은 멀티플을 받는 것이기에 정해진 멀티플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 센터장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투자한다는 것은 글로벌 AI 트렌드에 함께한다는 의미"라며 "이번 사이클에서 나를 대신해 일해줄 한국 메모리 업체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yt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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