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가 퇴임 후 처음으로 외부 강연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한금융투자가 최고경영자(CEO)·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상으로 연 '신한커넥트포럼'에서다.

그는 '대외여건 변화와 국내경제의 향방'이라는 주제로 연단에 섰다.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둘러싸고 국내외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었던 터라 그의 입에 쏠리는 눈은 어느 때보다 많았다.

포럼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포럼에 초대받은 소수의 CEO·CFO만이 그의 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연단으로 향하는 그는 여유로웠다. 다만 그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포럼장으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기자가 최근 시장 현상과 정책 방향성 등에 대한 생각을 물었지만, 이 전 총재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다는 입장이 강경했다. 질문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현재 한국은행을 향해야 한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비공개 강연에서 한 발언에는 아낌이 없었겠지만, 시장을 향해서는 묵묵부답을 택한 셈이다.

그의 침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말 한마디가 언론과 시장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일으키는 파장을 총재 임기 8년여간 익히 봐왔을 터다. 어떤 말이든 후임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그에겐 침묵이 손쉬운 선택지였을 것이다.

다만 최근의 시장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출렁이고 있다.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자포자기한 분위기로 버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책당국과 시장 전문가들을 향해 이목이 쏠린 배경이다.

과거 전 한국은행 총재들은 위기 때 뒤로 숨지 않았다. 통화정책과 시장 전문가로서의 소신을 밝히며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통화정책의 최전선에서 시장을 이끌었던 만큼 그들의 발언에는 해당 시점에 고민해야 할 통찰이 상당했다.

이주열 전 총재는 부총재 봉직 후 2년간의 외부 활동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43년에 이르는 근무 기간을 자랑하는 역대 최장수 한은맨이었다. 1998년 이후 최초의 연임 총재로 8년간 통화정책을 이끌기도 했다. 이런 이력이 보여주듯 시장과 통화정책에 대해서만큼은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로서의 제언보단 존재감 지우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물론 공적 자리를 벗어난 그에게 공적 잣대를 댈 수는 없다.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그의 선택 역시 존중한다. 다만 통화정책 전문가인 그가 사라진 것에 대해 시장참가자들은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투자금융부 피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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