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그동안 너무 말랑말랑했죠. 그래도 발행을 위한 신고서인데, 쉽게 고칠 수 있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만연했습니다"

최근 증권가 부채자본시장(DCM) 본부에 때아닌 비상이 걸린 것은 연이은 증권신고서 기재 오류 때문이다. 대형사부터 소형사까지 너나없이 실수를 거듭하자 해프닝으로 치부됐던 일들이 사고로까지 여겨지는 모양새다.

22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다수의 공모채 발행사가 수요예측에서 충분한 주문을 확인하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주관사단이 주로 작성하는 증권신고서가 금융감독원의 문턱을 넘지 못한 여파다.

JB금융지주는 이달 13일 발행 예정이었던 14회차 회사채 1천억 원 조달을 철회했다. 수요예측에서 2천600억 원의 주문을 확보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지만, 증권신고서가 발목을 잡았다. 신고서에 발행 금리를 오기재하면서 조달 기일 내 정정 작업을 마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SK플라즈마의 경우 공모채 데뷔전부터 조달일이 뒤로 밀리는 사태를 맞이했다. 증권신고서상 주요 발행 조건이 누락되거나 부실해 이를 보완해야 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NH투자증권이 청약 단위 오기재로 수요예측 실시 후 이튿날 다시 투자자 모집에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다소 유연한 모습을 보였던 금융감독원이 원리원칙대로 대응하면서 빚어진 헤프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증권신고서가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공시되는 공식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원리원칙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증권신고서 작성은 가장 기초적인 업무인 만큼 대부분 증권사 주니어 인력이 담당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막내급 직원의 단순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디테일이 완벽을 만든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의 안일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DCM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쌓아온 대형사조차 이런 사소한 실수를 비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SK플라즈마의 공모채 주관사단은 DCM 리그테이블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KB증권과 SK증권이었다. SK플라즈마의 경우 첫 공모채 발행이었던 만큼 경험자인 주관사단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았겠지만, 이들은 도리어 발생 연기라는 오명을 남겼다.

JB금융지주와 NH투자증권 공모채 발행 주관사단 역시 DCM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온 곳들이었다.

JB금융지주는 신한금융투자와 DB금융투자가, NH투자증권은 삼성증권과 SK증권, 미래에셋증권이 주관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이 최근의 증권신고서 오기재 사태에 책임이 있는 셈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증권신고서를 살피는 게 도리어 투자 결정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오인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어서다. 더욱이 최근에는 발행 철회 및 수요예측 재실시 등으로 주문을 넣고도 물량을 받아 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발행사와 투자자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증권사가 도리어 양측 모두에 불편함을 주게 된 셈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글로벌 IB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국내 증권사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증권사의 무한팽창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통 IB의 기본으로 꼽히는 DCM의 잇따른 실수를 그냥 넘기기엔 작지 않아 보인다"며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고 귀띔했다. (투자금융부 피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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