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흥국생명은 이 정도로 자금이 없나요?"
흥국생명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사태가 국내외 증권가, 채권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시장 신뢰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상환해야 할 채권을 콜옵션 기일에 갚지 못한 데다 최근 일부 산업에는 부도 리스트마저 돌아다닐 정도니, 직관적으로 유동성 리스크 등이 떠오르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에서 흥국생명의 유동성 영향은 크지 않았다. 물론 국내외 채권 조달이 얼어붙은 탓에 신종자본증권 차환 발행을 하지 못한 영향이 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금 상환조차 불가능했던 건 아니다. 현금 상환 시 규제 비율을 하회하는 탓에 금융당국과의 논의 끝에 콜옵션 미행사를 택했을 뿐이다.

문제는 흥국생명의 이번 사태가 이들만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보험사들의 한국물 조달이 가로막히는 것은 물론 국내 시장에 번질 효과마저 우려하고 있다.

A 투자금융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채권시장에서 모두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사태만 말하고 있을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사건"이라며 "내년 콜옵션 기일에 맞춰 국내외에서 신종자본증권을 찍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의 이번 선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배경이다.

사실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쉽지 않다는 건 올 상반기부터 예측 가능했다. BBB급 발행사 선순위채가 북빌딩(수요예측) 철회를 결정하기도 했고 한화생명은 하반기 조달 계획을 미루기도 했다.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도 모자랄 때, 가능성이 높지 않은 신종자본증권 발행만을 대안으로 삼은 점은 지나치게 대책 없는 행보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더욱이 흥국생명은 올 9월까지만 해도 NDR 등을 통해 콜옵션 행사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콜 리스크 등으로 발행 당시 100달러였던 채권 액면가가 90대 초반까지 떨어졌으나 발행 소식 및 콜 행사 표명 등을 이유로 99대까지 회복하기도 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다.

B 업계 관계자는 "이런 결정을 내릴 거면 대체 왜 콜을 행사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던 건지 모르겠다"며 "그냥 미행사해도 신뢰도가 꺾일 판에 약속을 번복한 터라 내년까지 상환하겠다는 최근 발언에도 큰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장을 놀라게 한 건 금융당국의 대응이었다. 흥국생명은 내년부터 도입될 신(新) 지급여력기준(K-ICS·킥스) 감독 체제 아래에선 관련 비율에서도 비교적 여유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2023년까지 두 달 앞둔 상황에서 시장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현금 상환 등을 허용해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사태가 일파만파 커진 후 흥국생명의 콜옵션이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발표해 더 큰 충격을 줬다. 악화한 시장 여론을 달래고자 금융당국이 소방수를 자처한 모양새였다.

전일 금융위원회는 "금융위는 물론 기재부와 금감원은 흥국생명 조기상환권 행사 계획을 인지, 지속해서 소통해왔다"며 "채권 발행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C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신뢰를 기반해 돌아간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리는 발언이었다"며 "당국이 공식적으로 이런 발언을 하면 글로벌 시장에 다른 한국물도 콜옵션 행사를 안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채권시장은 이미 강원도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신뢰 붕괴의 파급력을 확인했다. 'A1' 강원도의 보증이 무력화되자 2천50억 원 규모였던 ABCP 파장은 최대 200조 원의 정책 자금 투입으로도 경색 해소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로부터 한 달여가 흐른 지금, 흥국생명과 금융당국의 조화로 한국물 시장까지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D 업계 관계자는 "상환 의지가 없었던 강원도와 달리, 흥국생명은 상환 의지는 충분했다"며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당국과 흥국생명의 대안 없는 조달 전략 등이 결국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결과를 만들고 시장 전반에 불신을 심은 모습"이라고 전했다.(투자금융부 피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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