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이규선 기자 = 한국은행이 은행은 물론 상호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기타 예금취급기관에 대한 대출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에서 나타나듯 디지털화 등 금융환경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라 선제적인 위기 대응 수단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결국 2금융권 등 금융기관 전반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방침인 만큼 금융권의 도덕적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비등하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엄격한 규칙하에서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에만 등판하는 '최종대부자'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자금을 뿌리는 '최초대부자'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디지털 뱅크런 대비'…적격담보 대거 확대·2금융권도 은행 대우

한은은 27일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통해 자금조정대출 등 대출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발표했다.(연합인포맥스가 27일 12시08분 송고한 '한은, 대출제도 대개편…담보범위 파격 확대·2금융도 '은행' 대우(종합)' 기사 참조)

한은이 내놓은 개편안의 골자는 크게 3가지다. 우선 은행이 자금조정대출 등 각종 대출 담보나 차액결제이행용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채권의 대상을 우량 회사채까지 대폭 확대하고, 금리를 낮췄다. 또 상호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의 중앙회에 필요시 은행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담보 조건으로 대출해주기로 했다. 이어 향후 예금취급기관의 대출채권까지도 적격 담보로 편입을 추진한다.

결국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도 위기 시에, 한은에서 보다 싸고 손쉽게 돈을 융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에 대해 "미국 SVB 사태로 부각됐던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에 대비해 예금취급기관의 유동성 안전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출제도를 개편했다"고 총평했다.

◇도덕적 해이 어쩌나…한은 "금융안정이 우선"

제도 개편으로 은행권은 기존보다 약 90조원의 유동성을 추가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새마을금고와 상호저축은행, 신협, 농협, 수협, 산림조합 등 제2금융권은 필요시 약 100조원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게 됐다.

금융기관이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한은에서 손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됐고, 이는 평상시 자금 운용 등에서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도덕적해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은은 이번 대출제도 개편에서 2금융권 대출은 기존 한은법 80조의 요건에 따라 필요시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다만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한은법 제80조에 근거해 이들 기관의 중앙회에 대해 유동성 지원 여부를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신속한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새마을금고 등 신용금고의 경우 한은법 80조에 의거한 긴급대출 지원을 받았던 전례가 없다. 참고할 수 있는 기존의 경험칙이 없음에도 '신속한 지원' 방침을 강조했다.

도덕적 해이 발생의 위험은 있지만, 금융시장에 불안 조짐이 나타날 경우 선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자금 접근을 많이 해주면 도덕적 해이 문제는 반드시 나타난다"면서 "도덕적해이가 일부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금 접근성을 늘려서 금융안정을 도모하는 게 더 크다고 봤기에 금통위 전원일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감독규제 차원에서 도덕적해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 수반돼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2금융권 관리·감독 권한 없는 한은…깜깜이 지원 우려도

한은이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기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드러내면서 이른바 '깜깜이 지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한은이 새마을금고 등에 대한 감독 권한이 없는 것은 물론 핵심 정보 접근 자체도 제한적인 탓이다.

한은은 새마을금고의 경우 중앙회에 요청해 전체 대출 금액 등 일부 정보를 분기별로 제공받고 있다. 금고별 대출 등의 세부 자료는 받지 못한다. 연체율 등 건전성을 점검하기 위한 핵심 정보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만큼 한은은 "신속한 유동성 지원 결정을 위해 감독 당국과 한은의 수시 정보공유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독 권한을 어느 부서에 두어야 할지 등을 두고도 논란이 많은 만큼 한은이 어느정도 필요한 정보에 적시에 접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라면 결국 각 기관의 상황에 대한 한은의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정부의 요청 등에 따라 지원 여부가 결정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은행에 대한 대출제도의 개편은 한은이 은행을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이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 조치"라면서도 "아무런 관리·감독 권한이 없는 2금융권에 대해서도 적극적 지원 방침을 정한 이유는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향후 한은과 금융감독원 등 기관 간 갈등이 부상할 위험도 잠재한다.

한은이 이번에 발표한 조치 중에는 향후 은행의 대출채권을 적격담보로 포함하겠다는 방침도 포함된 탓이다.

한은은 이를 위해서 은행의 개별 대출 차주 등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과 업무 영역과 권한을 두고 마찰이 빚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홍 국장은 이에 대해 "정보공유에 대해 정부는 한은에 필요한 자료는 100% 전적으로 공유하고 도와주겠다는 입장"이라면서 "과거처럼 검사권 권한 다툼 문제 등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기자설명회
(서울=연합뉴스)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기자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임건태 신용정책부장, 홍경식 통화정책국장, 우신욱 금융기획팀장. 2023.7.27 [한국은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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