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회의서 은행권 DSR 우회 대출 강하게 질타
금감원, 이달중 은행권 대출행태 추가 공개
금감원은 대출 취급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은행의 실명과 함께 가계대출 심사와 영업행태상 문제점을 낱낱이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5일 임원회의에서 "은행 가계대출 점검 결과 규제를 우회하거나 행정지도를 무시한 채 영업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며 "가계대출 급증이 (정부)정책 때문이라고 '정부 탓'하더니 결국 진짜 원인은 규제 허점을 이용한 영업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들은 DSR 산정을 엉터리로 하고, 영업점 KPI(핵심성과지표)에 가계대출 취급 관련 항목을 포함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의 가계대출 취급 문제점을 상세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문제를 개선하도록 철저히 지도하고 재발 방지 방안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이날 이 원장의 작심발언은 가계대출 급증 원인이 은행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자 지난 8월부터 약 2달간 16개 은행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올 초 출시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대출 규제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가계부채가 늘어난 '주범'으로 지목되자, 은행들은 '정부의 정책에 맞춰 상품을 출시했을 뿐인데 이제와서 은행 탓만 한다'고 주장하며 책임공방이 벌어진 데 따른 것이다.
금감원이 현장점검을 통해 대출 규제를 제대로 준수했는지, 담보 가치평가나 소득심사 등 여신심사 과정은 적정했는지, 가계 대출에 대한 질적 구조 개선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들여다본 결과 은행들의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이 발표한 현장점검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은행은 최장만기 확대가 DSR 한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임에도 상품위원회의 심사 없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출시 등의 문제를 부서장 전결로 처리했다.
일부 은행은 최장만기를 50년으로 늘리는 목적을 '영업경쟁력 제고'로 명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DSR 우회·회피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금감원이 행정지도를 통해 영업점 KPI에 가계대출 취급 관련 항목을 제외하도록 지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가계대출 확대를 유인하는 구조로 운영한 것도 적발됐다. 가계대출 확대와 고가를 비례하거나 인사보상과 연계하기도 했다.
DSR 규제의 빈틈을 공략하려는 시도들도 많았다.
일부 은행은 신용대출을 생활안정자금을 주택담보대출로 대환할 경우 DSR 한도가 확대된다는 점을 영업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신용대출의 경우 5~10년의 만기가 적용되지만, 주담대는 최장 40년까지 적용돼 DSR 한도가 약 2.2배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번 점검 결과 2~3개 시중은행에서 유독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은행들의 가계대출 늘리기 심사 문제점에 대한 추가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이달 중으로 추가 설명회를 개최해 은행권 가계대출 심사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상세히 공개하고 유독 문제가 많이 드러난 은행에 페널티를 주는 등 경고성 개선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의 실명을 공개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내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Stress DSR) 방안 실행에 앞서 이번에 드러난 규제 허점을 보완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계부채 비율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은행권의 협조가 중요하다"면서 "대출 심사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충분한 경고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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