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중앙회장 "윤리, 조직 생존 좌우"…내부통제 대폭 강화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윤슬기 기자 = 농협중앙회가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금융사고를 낸 계열사 대표이사의 연임을 제한하겠는 대책을 내놓은 것을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중앙회의 이번 조치는 내부통제를 더욱 강화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는 동시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실질적인 관리 책임을 명확히 묻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부 계열사 CEO 인사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한 데다 금융감독당국이 농협의 지배구조를 정조준 하고 금융계열사에 대한 정기검사에 돌입하는 것과 맞물려 뒷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NH농협은행장의 거취를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농협중앙회 "중대 사고시 대표 자리까지 내놔야"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지난 7일 사건·사고가 다수 발생해 농협의 공신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면서 범농협 차원의 내부통제 및 관리책임 강화 방안을 내놨다.
강호동 중앙회장은 "윤리경영은 조직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며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책임 강화는 새로운 농협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회가 내놓은 대책에 따르면 사고를 유발한 행위자에 대한 즉각적인 감사 및 처벌은 물론, 농협의 공신력을 실추시킨 농·축협에 자금 지원과 예산·보조·표창 등의 업무 지원도 제한한다.
또 사고 발생 시 관련 책임자도 즉시 업무를 정지하고, 중대 사고와 관련된 계열사 대표는 연임을 제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횡령·부당대출 등이 발생한 원인이 내부통제를 소홀히 한 금융 계열사 CEO에게도 있다고 보고 직접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최근 농협에서 터진 사고들과 연결 짓는다면 농협은행장과 농협상호금융 대표에게 화살이 돌아갈 수도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 3월 약 109억원가량의 업무상 배임사고를 냈다. 내부 자체 감사를 통해 해당 사고를 발견하고 관련 직원에 대해선 형사 고발했다.
이 직원은 무려 5년 가까이 담보물의 가치를 부풀려 실제보다 많은 금액을 대출해줬다.
또 다른 농협은행 직원은 국내 금융업무가 익숙지 않은 귀화 외국인의 동의 없이 펀드 2억원을 무단으로 해지하고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사고 발생을 계기로 농협금융지주과 농협은행에 대해 강도높은 현장검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만료된다.
이번 중앙회의 강도높은 대책이 이 행장의 임기 만료와 묘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셈이다.
농협중앙회장 교체기에 농협은행장이 연임한 사례는 없다.
2016년 신경분리 이후 첫 중앙회장인 김병원 전 회장은 당시 이경섭 행장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교체했다.
2020년 이성희 회장은 3개월 전에 연임을 확정짓고 임기가 9개월 이상 남아있던 이대훈 행장을 전격 교체하기도 했다.
◇금감원 검사 맞물려 소급적용 여부 '관심'
농협은행 안팎에선 최근 중앙회와 금융감독당국 간 불편한 관계와 연관짓는 분위기도 있다.
지난 3월 임기가 만료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후임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중앙회와 농협금융 간 이견으로 다소간의 갈등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강호동 회장은 취임 직후 측근 인사를 NH증권 사장 후보로 추천했는데 금감원이 이를 문제 삼고 농협 전반의 지배구조를 살펴보겠다고 공언하면서 관계는 더 불편해졌다.
금융당국은 최근 발생한 농협은행 등 금융 계열사의 금융사고가 농협 내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내부통제 실패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 의심한다.
중앙회가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간 인사교류가 가능한 점이 내부통제 체계를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앙회가 강력한 내부통제 대책을 내놓은 것은 금융감독당국의 최근 입장에 어느 정도 호응해 주는 것도 있지만, 금융사고라는 이벤트를 통해 계열사에 대한 인사권을 되레 더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계열사 CEO의 연임 제한 기준점으로 제시한 '중대사고'의 범위와 과거의 일까지 소급 적용할 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석용 행장의 연임 여부에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앙회는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고 임직원의 경각심을 키우기 위한 방안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반면,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은 최고위급 인사 폭이 커지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앙회가 내부통제 강화를 명분으로 CEO 인사권에 대한 그립을 더욱 강화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을 것"이라며 "금감원이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돌입하는 시점과 맞물려 공료로운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고에 대해 CEO가) 책임을 질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다른 금융지주들처럼 농협금융 회장이 계열사 사장을 임명하는 과정이 더 공정하고 투명해지도록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