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법·농협법 동시 적용에 오락가락 지배구조
폐쇄적 CEO 선임 ·경영승계 절차도 불투명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NH농협금융지주는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인가를 받은 은행지주회사지만, 태생은 농협이다.
다시 말해 설립 근거가 농협협동조합법에 있는 '옥상옥'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농협금융의 금융 자회사들은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 두 곳의 지배를 받는 셈이다.
다양한 금융규제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를 농협법이 상쇄해주는 기형적인 지배구조의 부작용은 2012년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이후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농협의 특수성을 이유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시키는 금산분리 원칙에서 제외한 탓에 중앙회장의 인사 개입 논란 등 경영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농협금융은 거대 공룡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 지배구조로 4대 금융지주와의 경쟁에서도 점점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협 '특수성'이 뭐길래…예외 적용 '나몰라라'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금융지주회사법 적용 대상으로 엄격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고 있다.
동일인이 지분 10%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의결권도 4% 이내로 제한된다. 산업자본의 경우 보유지분 한도가 4%로 제한된다.
또 지주사 등의 인사 또는 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가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법상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지주 회장 등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전국 단위 조합들의 출자금으로 설립·운영되는 비영리조직인 농협만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부가 예외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농협법 제12조는 '농협은행은 금융지주사와 그 자회사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행사 금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농협금융에 대한 경영 개입도 농협법에 근거한다.
농협법 제142조의2에 따르면 '중앙회는 자회사(농협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도 포함)가 그 업무수행 시 중앙회의 회원 및 회원 조합원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결과에 따라 해당 자회사에 대해 경영개선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자회사인 농협금융을 감독할 권리를 갖고 있고,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경영·인사에 적극 개입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충되는 두 법을 동시에 적용받는 태생적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이 농협금융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목하며 고강도 검사에 돌입했지만, 지배구조법과 은행법만으로 농협중앙회의 부당 행위를 잡아내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금융지주회사법은 금융위원회가 관장하다 보니 법 개정 얘기를 꺼내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면서 "정치적으로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라 이번에도 10년 전처럼 군불 때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계열사 CEO 추천 권한도 없는 금융지주 회장…뒷걸음 지배구조
10년째 아무도 손대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기형적 지배구조로 인해 농협금융의 지배구조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간판은 금융지주이지만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에서부터 경영승계, 이사회 구성까지 덩치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 등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계열사 CEO 경영 승계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사외이사 전원으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구성한 것과 달리 농협금융은 사외이사 3명과 사내이사 1명(부사장급), 비상임이사 1명만 참여한다.
4명이 금융지주 회장 및 계열사 대표이사 등을 모두 결정하는 구조다.
농협금융은 또 내부 규정에 금융지주 회장이 임추위에서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지주의 회장이지만 은행장 등 계열사 대표 후보 추천 자격조차 없다는 얘기다.
대신 농협중앙회 출신 비상임이사가 그 이상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타 금융지주사들이 금융지주 회장을 임추위에 포함시키고 은행장을 비상임이사에 앉혀 견제하도록 한 것과 다른 구조다.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도 불투명하다.
농협금융을 제외한 4대 금융지주는 최소 2개월 전에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 평소 내부 후보자군은 외부 후보자군까지도 롱리스트로 관리한다.
매분기 후보자군을 업데이트해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지배구조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와 달리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와 일부 계열사 임원들만 형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외부후보군은 금융 경력자로 필요시 선발한다'고만 명시해 언제 누가 외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올지 모르는 구조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농협은 지배구조 내부규범만 따져봐도 농협중앙회가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구멍이 많다"면서 "지난 10년간 타 금융지주들이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것과 달리 농협금융은 '특수성'을 이유로 제자리 걸음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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