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지난주 러시아가 드론으로 폴란드 영공마저 침범하면서 동유럽의 군사적 긴장이 가일층 고조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휴전할듯 시간을 끌었지만 속내는 전쟁 연장과 전선 확대에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폴란드 영공의 나토군 전투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와는 얘기가 다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를 침공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나토 회원국, 즉 유럽 주요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번 드론 침투를 두고 러시아가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은 아직 소수 의견이다. 러시아로서도 나토와 비교해 군사적으로 열세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서방에 긴장을 조성하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양보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침투 목적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비영리 정치 연구 기관 아틀란틱카운실은 최근 분석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기 위해 러시아는 지렛대로 폴란드 위기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이상 확전되길 원하지 않으면 양보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게 목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점진적으로 폴란드까지 전선을 넓힐 수 있는 만큼 미국을 위시한 나토가 선제적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도발에 소극적으로 방어만 할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도 군사 작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제 대응 목소리가 커지면서 미국의 대응 시나리오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나토 조약 구조상 '자동개전' 조항은 없다. 대신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하면 나토는 조약 제5조에 따라 집단방위 논의를 시작한다. 제5조는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며 회원국 전체의 방위 논의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제5조가 발동되기에 앞서 회원국들은 제4조에 따라 회원국 간 협의에 들어간다. 지난주 러시아 드론이 폴란드 영공을 침범하고 격추된 후 나토는 제4조를 발동했다. 제4조는 회원국 안보가 위협받을 때 긴급 협의하는 조항으로 즉각 군사 행동을 의미하진 않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만장일치로 조약 제5조가 발동되면 회원국은 각자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necessary action)"를 취하게 된다. 나토의 신속대응군(NATO Response Force·NRF)을 비롯해 가용 전력이 폴란드 방어에 총동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NRF는 약 4만명 정도의 병력으로 구성되며 육해공군 및 특수부대가 포함돼 있다.

NRF의 투입과 함께 나토는 미군을 주축으로 국지적인 제공권 장악과 지상전을 동시에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권 정책 연구 기관은 이런 시나리오에서 동유럽 북동 지역이 화약고가 될 것이라며 발트해 3국이 러시아 및 벨라루스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는 한편 미국과 영국, 독일 등 나토 주력군이 대규모 공중 타격과 지상군 증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토가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막기 위해 오히려 전쟁 초반 전격전을 펼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발트해 3국과 폴란드 국경에서 수비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까지 공격적으로 진격하며 영토를 수복하는 전략이다.

아틀란틱카운실은 "이번 드론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공망 제공 등 전진 방어(forward defense)를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다만 재래식 무기 면에서 나토에 열세인 러시아의 패퇴는 분명하지만, 러시아가 핵무기로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나토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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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대응 시나리오에서 한 가지 전제 조건은 31개 나토 회원국 전체가 이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미국의 동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데 미국으로선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집단 방위가 결정되면 미국이 직접 러시아와 충돌해야 하지만 나토 내 위치를 고려하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토가 참전을 결정하더라도 형식적으로는 미국이 국내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 미국 헌법상 선전포고 권한은 의회에 있지만 최근 분쟁들은 미국 대통령의 전시권한(war powers)을 인정한 사례가 많다. 나토의 군사적 행동이 결정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군사 대응을 우선 지시한 뒤 의회 동의를 구하는 형식적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군사 개입은 명백한 무력 공격 여부에 달려 있다. 러시아의 고의적 무력 행위로 폴란드에서 상당한 인명 피해나 시설 파괴가 일어날 경우 나토 조약 5조가 발동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의 군사적 의지에 대해선 유럽 외교가에서도 의구심이 커지는 양상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드론의 폴란드 영공 침범 이후 트럼프가 "실수였을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독일 고위 관료는 "미국이 나토 동맹국과의 드론 대응 논의에 참여했으나 주저하는 모습만 보였다"며 "이번 미국 행정부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없는 셈 칠 수도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다른 동유럽 국가의 외교관은 언론에 "현시점에서 나토의 누구도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안심을 얻지 못했다"며 "워싱턴의 침묵은 거의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고 우려했다.

하버드벨퍼센터의 이보 달더 선임 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트럼프가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과 달리 유럽의 안보가 미국 안보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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