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독일을 통일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통일기금 조성과 조세, 연방정부의 예산 등 세 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통일 초기에는 통일기금 조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흡수통합 식의 금융통합이 진행되면서 동독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마련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통일비용 마련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 불가피

독일 정부는 통일을 3개월여 앞둔 1990년 6월부터 통일기금을 조성했다. 주요 재원은 국채 발행이었다.

1994년 말까지 조달된 통일기금은 1천150억마르크(DM)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약 83%인 950억마르크가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됐다. 나머지 200억마르크는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충당됐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국채 발행을 통해 절반씩 통일기금을 조달하고 이를 20년에 걸쳐 상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독일 정부가 통일기금 조성 과정에서 국채발행을 선호한 것은 국채발행 자체가 기술적인 어려움이 크지 않은 데다, 지속적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세금 인상 등의 방식은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치적인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일 정부가 국채발행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통일기금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부채 규모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독일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가 확산했다. 공급 증가에 따른 국채가격 급락(국채금리 급등)도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통일 전 5천억유로 규모였던 서독의 국가부채는 통일 이후 1조5천억유로로 증가했다.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는 통일 전 40%에서 3년새 60%대로 늘어났다.

독일의 10년만기 국채금리는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에다 분데스방크의 긴축정책이 맞물리며 최고 9%대까지 치솟았다.

도이치방크의 스테판 슈네이더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통일 전 독일 국채금리가 미국 국채금리보다 250bp가량 낮은 수준이었지만, 통일 이후에는 독일 금리가 미 금리보다 50bp 정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국채 발행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에 신뢰 주는 것"

통일 이후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당시 독일 금융시장 전반에 불안 심리가 확산했음에도 독일 당국자와 금융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시적으로 불안 요인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독일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믿음으로 충분히 소화 가능했다는 의미다.

독일 재무부의 통화정책 담당 관계자는 "통일 당시 독일의 국가채무 비율은 40% 수준으로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며 "그래서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고, 정부가 채권 발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장 금리를 조정할 필요성도 크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독일의 신용등급은 매우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분트채는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랄프 솔빈 코메르츠방크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로 발행된 분트채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팔기 위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며 "독일의 신용등급은 매우 양호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늘어난 국채를 소화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스테판 슈네이더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외국인 투자자는 분트채 매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높은 신용등급의 이유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라며 "외국인은 통일 직후 잠시 동안 통일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독이 통일의 모든 과정을 잘 컨트롤할 수 있으며 이 과정들이 독일 경제에 좋은 영향을 가져올 것이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통일 과정에서 국채 발행은 불가피한 수순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랄프 솔빈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은 'AAA'의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과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다"며 "다만,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주는 올바른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기대 이상의 투자 자본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에 자본을 보낼 수 있는가. 이득이 될 만한 것은 올리브나무와 치즈밖에 없는데…' 라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투자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한다면 기업들은 그리스로 이동해 그곳에서 생산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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