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한국은행이 설연휴를 지나면서 깊은 시름에 빠졌다.국고채 3년물 지표금리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밑도는 등 금융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2월 기준금리 결정을 위한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락하는 등 대외 여건도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한은 집행부를 난처하게 몰아세우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는 연초까지도 추가 가준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명확히 했으나, 최근에는 향후 금리 향방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한은 관계자들은 11일 예상보다 나쁜 수출과 완화 기조로 선회한 주요국 통화정책 등 인하 요인, 금리 효과 제약 및 금융시장 불안 등 동결 요인이 뒤섞인 안갯속 정국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오는 16일 열리는 2월 금통위에서 당장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만, 1·4분기 경기윤곽이 나오는 3월 금통위에서는 추가 금리 인하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예상보다 나빠진 경기…대외 여건도 인하 압박

대부분 한은 관계자들은 연초 발표된 경제지표 등을 감안할 때 지난 1월 한은이 제시한 경기전망보다는 국내경기가 나빠졌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은 한 관계자는 "1월 수출이 18.5%나 급감했고, 심리 지표도 얼어붙었다"며 "경기 상황이 당초 전망보다 좋지 않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65로 지난 2009년 3월 이후 최저치로 나빠졌다. 1월 소비자심리지수(CSI)도 지난해 메르스 이후 최저치다.

대외 여건도 한은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불안과 국제유가의 추가 급락, 유럽 은행권 부실 가능성까지 세계 경기 우려를 키울 수 있는 요인이 잇달아 불거졌다.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완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리 인상에 돌입한 미국도 한발 물러섰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전일 하원 증언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필요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완화 정책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란 발언도 내놨다.

국고채 3년물 지표금리가 연 1.5%인 기준금리 아래로 떨어지는 등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양상이다.

◇ 인하 효과 의문 여전…"하루하루 고민"

대내외에서 금리 인하를 압박할 요인이 강화되면서 한은 내부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기존의 완강한 스탠스에 다소간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은의 다른 관계자는 "대내외 여건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닫아놓을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며 "2월 금통위에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금통위원들이 대거 퇴임하기 직전인 3월 금통위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적인 반면 가계부채와 자금유출 등 부작용은 클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수출 부진 등이 국내 경기 요인이라기보다 대외 여건에 따른 것으로 금리로 제어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도 고민을 키우는 지점이다.

지난 1월 금통위에서도 다수 위원이 경기가 예상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지만, 금리 인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위원은 없었다.

한 위원은 오히려 "글로벌 요인에 의한 대외수요 부진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생산요소 가격 조정을 통한 투입량 확충이나 일시적인 총수요 진작책만으로 저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달러-원 환율이 1,200원을 넘나드는 가운데 외환당국이 달러 매도 개입으로 추가 상승을 제어 중인 점도 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금리를 내리면 당국이 더 강하게 매도 개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한은이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 등 미시적인 부양책을 우선 도입하고, 향후 경기추이를 보며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한은의 한 핵심관계자는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에 대해 "정책 가능성이야 열려 있는 것이지만, 정말로 금리 인하의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인지는 의문"이라면서도 "상황의 변화가 워낙 심해서 하루하루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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