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피혜림 기자 =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면서 글로벌 채권시장 내 한국물(Korean Paper) 조달 불안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매크로 환경의 리스크가 고조된 가운데 흥국생명이 투자자와의 신뢰를 깨면서 한국물 전반의 평판 저하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해당 채권의 경우 국내 투자 규모도 상당했다는 점에서 원화 시장 역시 사건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전일 흥국생명은 이달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차환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시장 불안 등으로 국내외 조달이 얼어붙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소식이 알려지자 글로벌 채권시장 내 흥국생명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투자자들이 채권을 던지면서 발행 당시 100달러였던 액면가가 콜옵션 미행사 직후 82.5달러 수준까지 급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일 오전 99달러 후반대를 형성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흥국생명 발(發) 쇼크가 한국물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콜옵션 미행사를 둘러싼 불안이 커지면서 과거 한화생명[088350]이 발행한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등의 매도세도 뚜렷해졌다. 투매 현상이 나타나며 단시간 내 호가가 급증했다.

한국물 시장에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상 콜옵션은 당연히 행사해야하는 투자자와의 약속인 터라 시장 참가자 대부분이 이런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최근 미국의 고강도 긴축과 차이나 런(china run)을 계기로 한국물 발행이 멈춰선 상황에서 또 다른 충격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콜옵션은 투자자와의 신뢰 문제"라며 "한국물의 경우 정부가 어느 정도 가이드를 한다고 믿고 투자자들이 다른 국가 채권보다도 더 안전하게 평가했으나 이번 사태로 시장 전체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던 우리은행 사태가 장시간 시장을 압박했던 만큼 흥국생명과 관련한 시장의 우려는 더 확산하는 모양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녹록지 않은 시장에 악재를 던진 흥국생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과거 유사한 사태로 한국물 전반이 입은 피해를 확인하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콜옵션이 투자자들에게 상당히 민감한 이슈인 만큼 차환 발행이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대응에 나섰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타산지석이 될 만한 사례는 해외에도 있었다.

지난 2019년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은 코코본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 해당 사태가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유럽 금융시장에서는 콜 리스크를 재평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콜 리스크는 유럽 금융시장 발행물 전반으로 오랜 시간 확산했다.

흥국생명 논란이 확산하며 당장 조달을 준비했던 하나은행[086790]도 부담을 갖게 됐다.

하나은행은 지난주 캥거루본드(호주 달러 채권) 북빌딩(수요예측)에 나섰으나 시진핑 3기 출범 등으로 차이나 런 현상이 본격화하면서 이번 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투자자 모집에 다시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로 시장 충격이 커지면서 북빌딩에 더욱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캥거루본드의 경우 아시아 투자 기관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영향권에서 비껴가기 힘들다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관측이다.

국내 채권시장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 중 20%가량이 국내 시장에서 소화됐던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피해 확산 여파 등을 지켜보고 있다. 해당 물량은 주로 리테일 등의 채널을 통해 판매된 상태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관의 경우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투자 시 콜옵션 행사만 보고 담는 경우가 상당한 터라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리테일 쪽 투자의 대부분이 코코본드인 데다 최근 투자 심리가 위축된 터라 국내 은행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시장까지 미칠 여파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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