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취득 공시 후 실제론 통정매매…상속세 회피 목적"
(서울=연합인포맥스) 온다예 기자 = 부친의 회사 지분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통정매매를 한 혐의를 받는 윤경립 유화증권 대표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에는 윤 대표의 행위가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부정한 수단·기교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명재권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하면서 "자기주식(자사주)을 적법하게 취득할 것처럼 공시한 후 실제로는 통정매매를 통해 부친의 주식을 매수했다"며 "그 과정에서 주식시세를 조종하는 등 기망적인 방법을 사용해 부당한 사적 이득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윤 대표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창업주이자 부친인 고(故) 윤장섭 명예회장 유화증권 주식 약 80만주(120억원 상당)를 회사가 통정매매 방식으로 사들이게 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지난해 12월 기소됐다.
윤 대표는 회사가 자사주를 공개매수한다며 공시한 뒤 실제로는 매도·매수자가 사전에 거래 시기·수량·단가를 협의해 거래하는 통정매매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윤 대표가 지분을 상속하는 대신 회사가 자사주로 취득하게 해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 했다고 봤다. 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자사주를 확보해 최대주주인 윤 대표 자신의 경영상 지배력도 강화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윤 대표 측은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단순한 통정매매'에 불과해 금융당국의 과징금 대상일 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매매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일반 투자자가 그릇된 판단을 하도록 유인할 목적이 없어 자본시장법 제178조 1항1호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조항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와 관련해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윤 대표가 중과세 대상인 상속세가 약 147억원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자 이에 부담을 느껴 범행했다고 보고, 윤 대표가 저지른 통정매매 범행은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화증권이 자기주식을 직접 취득하려면 공개경쟁을 통해 취득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상속재산 가치상승, 상속·증여세 가중규정 회피 등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주식을 넘겨받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주식 취득방법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통정매매, 시세개입, 허수성 매수주문 제출 등의 행위까지 저질렀고 이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당시 통정매매는 주문 시간·수량·단가를 사전에 정한 뒤 윤 명예회장 쪽이 매도 주문을 내면 유화증권이 같은 가격에 매수주문을 내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대부분의 주문이 1초만에 체결됐다. 매도 주문과 매수 주문 사이의 시간차는 최대 2분41초에 불과했다.
윤 대표는 통정매매 성공률을 높이고 상속 재산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세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에게 다음날 시초가를 특정가격으로 만들라고 지시하거나 인위적인 매도·매수주문을 내도록 해 시세 형성에 관여했다.
아울러 시가나 최우선 호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대량의 허수성 매수주문을 제출해 주문이 체결되지 못하도록 한 뒤 금융위에 제출하는 자기주식취득결과 보고서에는 '거래량 부족에 따른 주문수량 미체결'이라고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증권사의 대표이사로서 이번 범행이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를 침해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직업윤리를 저버린 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이어 "구체적인 액수는 산정할 수 없지만 이 사건으로 회피한 조세부담액, 상속재산의 가치하락 방지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취한 부당이득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면서 불구속 재판을 받던 윤 대표는 선고 직후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윤 대표와 함께 기소된 유화증권 법인에도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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