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정원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빨리 긴축 행보의 막을 내리면서 연준에 이어 금리를 인상해보려고 준비하던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시도도 못 해본 채 통화정책 방향을 추가 완화로 전환하고 있다.

연준이 2015년 12월부터 아홉 차례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전 세계 중앙은행은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와 자국 경제 상황을 살피다가 제대로 된 긴축에 나서지 못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난 3년간 단 한 차례도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고 완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 중앙은행 기준금리 변화 추이>

 호주중앙은행(RBA)은 지난 6월 2년 10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기존 1.50%에서 1.25%로 25bp 내린 데 이어 7월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또 한차례 내리면서 기준금리를 1.00%로 책정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RBA의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은 향후 기준 금리를 올릴 계획임을 시사했으나 6개월 만에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RBA는 7월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에서 필요할 경우 금리를 더 인하할 수도 있다고도 언급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 기준금리 변화 추이>

뉴질랜드는 지난 5월 2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1.50%로 25bp 인하했으며 6월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은 지난 2월만 해도 "2019년과 2020년까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다음 기준 금리 움직임은 인상일 수도 인하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으나 3개월 만에 완화 기조로 돌아섰다.

RBNZ는 3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주요 무역 상대국인 호주와 유럽, 중국 등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약화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의 통화 완화를 예상케 한다고 판단했다.

러시아도 급하게 완화 기조로 돌아선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연준의 긴축 기조에 따라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 6개월만인 지난 6월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7.5%로 25bp 인하했다.

칠레 중앙은행은 올해 1월 기준금리를 2.75%에서 3%로 인상했으나 5개월 만인 지난 6월 기준금리를 2.5%로 50bp 대폭 인하했다.

<미국, 유럽, 일본의 정책금리 변화 추이>

기준금리가 이미 마이너스 수준인 일본도 출구 전략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완화 정책을 상당 기간 이어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당초 일본은행(BOJ)은 대규모 완화정책을 무한정 이어나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강력한 통화 완화정책에 따른 부작용이 언급되는 등 시장에서도 출구전략에 대한 논란은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일본의 경제활동과 물가수준은 이전 상황처럼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대규모 정책을 결단력 있게 시행해야 하던 때와 다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준이 완화 '깜빡이'를 켜면서 필요시 추가 완화를 도입하겠다는 일본은행의 입장은 다시 강해졌다.

연준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일본은 내외 금리 차 축소로 인한 엔화 강세 현상에 부딪힐 수도 있다.

수출 의존적인 일본 경제가 이에 따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추가 완화에 힘을 싣는 포인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지난 18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1.75%에서 0.25%포인트(p) 내렸다. 기준금리 인하는 2016년 6월(1.25%로 0.25%p↓) 이후 3년 1개월 만이다.기준금리는 2017년 11월과 지난해 11월에 0.25%p씩 올랐다.

글로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대전환에 추가 완화가 선명해질 또 다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최근 구매관리자지수(PMI) 등 여러 주요 지표가 약세를 보이며 경제 둔화를 시사했다.

지난 15일 발표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6.2%로 1992년 분기 성장률을 집계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이미 다수의 전문가가 중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차이나베이지북은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경우 인민은행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글로벌 중앙은행, 왜 주저앉았나

긴축 시도도 제대로 못 해본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갑자기 완화 기조로 전환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미·중 무역전쟁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 장기화를 통해 현재의 경기 확장세를 최대한 연장해 경기 침체를 미뤄보자는 것이 전 세계 중앙은행의 의도다.

두 번째는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긴축 행보의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비둘기파적 모습을 보인 이유는 필립스 곡선에 숨어있다.

필립스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간의 역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모두 유지되는 현상을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1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지난 50년간 강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결제은행(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은 지난 9월 발간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BIS는 "필립스 곡선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평탄해졌다"면서 "(이번 보고서는) 선진국 중앙은행 및 국제기구는 인플레이션이 더는 국내 요인에 반응하지 않을 때 정책 옵션을 논의할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쓰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IMF도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통화정책에 대한 인플레이션의 민감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플레이션 쇼크에 대응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면서 "이는 (인플레이션 쇼크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응이 달라져야 하는지, 달라진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 글로벌 중앙은행, 연준 따라 '유턴'해도 통화정책 효과는 '미지수'





<뉴질랜드, 영국, 스웨덴, 캐나다, 스위스, 인도네시아,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 정책금리 변화 추이>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비둘기파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중앙은행도 우르르 완화 기조로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과연 이 완화적 통화정책이 경기 부양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준이 지난 3년간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호시탐탐 긴축의 기회만 노리다가 충분히 통화정책을 정상화하지 못한 만큼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많지 않은 데다 현재보다 금리를 더 인하한다 해도 실물경제에 유의미할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딜로이트액세스이코노믹스는 호주의 경우 현재 자금 압박이 완화된 상태라면서 기준금리가 더 낮다고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딜로이트액서스이코노믹스는 "경제의 차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잠재력 측면에서 봤을 때 여력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최근의 금리 인하 결정은 향후 경기침체의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RBA가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전 호주의 기준금리는 7.25%였다"면서 그동안 500bp 넘게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향후 50bp, 75bp 정도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현재 상황을 얼마나 개선해줄지, 도와준다 해도 얼마나 오래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뉴질랜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뉴질랜드는 2008년 경기침체 당시 인플레이션 수준이 5.1%였고 기준금리는 8.25%였다.

뉴질랜드의 기준금리는 현재 1.5%까지 떨어졌지만, 경제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아 RBNZ는 6월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도 추가 금리 인하를 논의한 상황이다.

IHS 마킷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라지브 비스와스는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즉 중기적으로 봤을 때 글로벌 경기가 침체할 것이라고 예상하진 않지만 낮은 가능성이나마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내놓을 여력이 매우 제한적이다"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도 추가 완화정책으로 이전 수준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CE의 줄리언 에반스-프릿차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완화적 통화정책에 나설 것이라면서도 "규모가 크고 급격한 경기 부양의 시대는 아마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희망은 경제가 너무 급격히 둔화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정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20년'으로 인해 비전통적 통화정책까지 동원한 일본은행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은 2016년부터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지만, 물가목표치 2% 달성은 요원하다.

일본은 완화정책의 효과 여부를 넘어서 완화정책의 지속가능성 및 부작용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미 BOJ 심의위원들은 "일본은행은 통화 완화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조치를 계속 검토해야 한다"며 "광범위한 추가 완화 조치의 타당성과 효과, 부작용을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이와증권의 마리 이와시타 이코노미스트는 "BOJ는 통화 완화정책의 부작용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BOJ 단독적으로 내놓을 수 있을 만한 효과적인 정책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의 브라이언 콜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완화정책이 수요와 인플레이션을 뒷받침하는 효과를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스러운 상황"이라면서 "높은 유동성이 실질적인 투자와 소비를 늘리기보다 금융자산 가격만 높이는 데 더 주요한 영향을 미칠 리스크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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