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인포맥스) 이종혁 백웅기 기자 = "독일 제조업을 얘기할 때 교육시스템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기업체가 요구하는 인력을 시스템적으로 잘 대비해 보완해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배경, 더 나아가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통일 동력을 찾아보고자 베를린을 찾은 날은 독일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이튿날이었다. 전날 흥분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았지만, 독일인들은 그 결과가 당연하다는 듯 짐짓 차분한 모습이었다.

베를린에 있는 DIW 연구소 사이먼 융커 박사 얘기를 듣고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융커 박사는 독일의 경제분야에서 가장 큰 연구소로 꼽히는 DIW에서 시장 경제동향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일은 10여 년 전부터 유소년 육성과 더불어 자국 리그 구조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등 시스템 변화를 통해 대회를 준비해왔다. 오랜 시간 동안 국제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풀을 기르는 교육 시스템을 갖췄던 것이다.

독일 제조업도 마찬가지로 오랜 전통을 가진 교육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 제조업, 교육제도 기반 위에 '우뚝'

독일이 완벽한 준비를 하고 통일을 맞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 덕분이었다. 특히 제조업 부문에 있어선 독일의 교육 시스템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융커 박사는 "독일은 반은 학교에서, 반은 기업에서 실습하는 듀얼 시스템(Dual system)을 통해 상호 간 바로 인력을 충당할 수 있는 구조가 이뤄져 있다"며 "기업체가 요구하는 요원을 시스템적으로 잘 대비해 보완해줄 수 있었다"고 제조업 발전 기반이 된 독일 교육시스템의 장점을 설명했다.

독일에선 기본교육 과정을 마친 청소년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이 시스템 안에서 직업훈련을 받는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주로 실습 위주 훈련을 받으며 실질적 업무에 투입되는 동시에 학교에서 이론적 토대를 쌓는다.

2012년 이들 직업훈련 과정을 마친 졸업생 3명 가운데 2명꼴로 훈련을 받은 기업에 곧바로 채용됐다. 그 결과 유럽연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청년 실업률은 작년 7.6%를 기록해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과 함께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조사됐다.

융커 박사는 한편으론 독일의 학교들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자율적으로 유럽연합(EU) 공통의 학제를 적용, 기존의 초·중등 13년 의무교육과정을 12년에 걸쳐 가르치는 데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어찌 보면 겨우 1년 정도 교육 기간이 축소된 것이지만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졸업할 우려가 있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지속적인 '기반 다지기' 준비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대목이기도 했다. 우리뿐 아니라 북한 노동력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 통일독일의 실수…임금, 화폐개혁, 국영기업 사유화

융커 박사는 통일을 전후로 한 독일 제조업의 변화상을 묻는 말에 우선 독일의 세 가지 큰 실수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첫 번째 실수는 동독 지역 임금을 빨리 인상해 통일 1, 2년 사이 서독 수준으로 많이 올린 점이다. 동독 노동력이 생산력을 갖춘 상태라면 괜찮은데 그게 아닌 상태에서 임금 차이가 너무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던 동독 지역 주민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었지만 정책으로 인위적인 임금 인상은 피했어야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동-서독 화폐를 1대 1로 교환한 것을 두 번째 실수로 꼽았다. 융커 박사는 "소비 장려를 위한 정책이었지만, 동독인들에게 갑자기 부유해졌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소비도 좋지만 수입이 균형을 맞춰야 했다"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다.

신탁청을 통해 이뤄진 동독 국영기업의 사유화 작업이 너무 급하게 이뤄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동독 내 자본이 없다 보니 대부분 서독에서 들어왔는데, 인내를 갖고 천천히 진행해야 할 일을 너무 빨리하려고 하다 보니 서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져 부작용도 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실수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한반도 통일 시 남북 화폐를 수년간 통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화폐 가치에 따라 화폐개혁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뒤따랐다.

◇노동시장 개혁으로 제조업도 본궤도에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는 제조업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융커 박사는 "통일 이후 높은 임금으로 기업들 파산이 계속되다 보니 실업률이 높아졌는데 당시 사회당 슈뢰더 정권은 하르츠 피어(Hartz Ⅳ) 정책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2002년 2월 독일은 폴크스바겐사(社) 인사담당이사 출신의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임시직 고용 증진을 위한 규제 완화, 소규모 소득의 신규 일자리 창출, 실업급여 지급 등 4단계에 이르는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2010 어젠다' 등 당시 심각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근본적 대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는 "강력한 정부 정책 드라이브가 이어지고, 긴축재정에 '허리띠 졸라매자'고 폴크스바겐이 임금 분할 정책을 현실화시키는 등의 작업이 이어지면서 2004, 2005년에 실업률이 많이 낮아져 재차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점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융커 박사는 "인프라는 동독 지역에만 투자가 집중되고 서독을 등한시하다 보니 서독 지역 사람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등 준비 부족으로 말미암은 문제들도 많이 있다"며 "똑 부러지게 정리되지 않는 문제, 여러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정책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박'도 어떻게 준비하고 키우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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