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프랑크푸르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충격의 강도는 두 통화의 교환비율에 달려 있다. 하지만 환율이 적절하더라도 북한 경제가 붕괴하는 것은 자명하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경제 전문가들은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통일 이후 화폐 통합 과정에서 한반도의 혼란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유로존 내 최고 부국(富國)으로 손꼽히는 독일 역시 서독과 동독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금융ㆍ경제 분야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화폐 가치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합의를 통한 전격적인 화폐 통합이 금융과 산업 부문에서 혼란의 단초가 됐다.

동독과 서독의 화폐 교환 비율을 1대1로 정하면서 당시 '도이치마크(Deutschmark)'에 대한 열망에 젖어 있던 동독의 노동자들이 서독으로 몰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서독 지역에서의 수요가 급등한 반면 산업의 근간인 노동력이 없어진 동독 지역에서는 일자리가 20% 가까이 '증발'하는 피폐함으로 이어졌다.

일자리 감소는 동독 기업들의 민영화 추진과 서독 기업으로의 피(被)인수 과정에서 본격화했지만, 근저에는 1대1 비율을 적용한 화폐 통합 방식이 상당 부분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英 이코노미스트 '獨, 유럽의 병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지는 '유럽의 병자(sickman of Europe)'로 다름 아닌 독일을 지목했다. 유럽 언론들도 독일의 통일을 '실패한 결단'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독일이 통독 이후 저성장과 실업률 상승 등 통일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독일의 실업자수는 446만4천명을 기록했고 실업률도 통독 이후 최고 수준인 10.8%까지 치솟았다.

지역별로 실업률을 따져보면 옛 동독 지역의 실업률이 18.5%, 옛 서독 지역의 실업률이 8.7%를 기록할 정도로 동독의 실업률이 독일의 전체 실업률을 끌어올렸다.

독일 재무부 통화정책 담당 국장은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화폐인 도이치마크를 가지고 싶어했다"면서 "도이치마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상품들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 獨 전문가 "자본 최대한 끌어들여라"

독일 경제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통일이 갑자기 들이닥칠 상황에 대비해 기업들의 투자 자금이 최대한 유입될 수 있도록 구조적 환경을 미리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반도가 경제 통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란을 자본 축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동독에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동독 지역에 투자하는 민간 자본에 각종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화폐 통합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썼다.

랄프 솔빈 코메르츠방크 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 많은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통일에 따른 화폐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향후 북한 지역으로의 자본 유입이 소득을 유발하고, 이는 또다시 내부 수요를 일으켜 산업이 살아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고 권리를 보장해주면 그곳에서 생산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올바른 정책만 있으면 자금 유입과 투자 자본 유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본사에 있는 딜링룸>

알렉스 린드너 할레대학교 경제연구소 거시경제부문 헤드(Head)는 "동독 지역의 내부 수요가 살아나면서 지역 내 상품 공급자들이 소득이 생겼고 수출 산업도 발전했다"고 말했다.

요아힘 라그니츠 Ifo 경제연구소 박사는 어떠한 화폐 교환 비율을 적용하더라도 통일 이후 북한 경제가 붕괴(collapse of the North Korean economy)되는 것은 자명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 경제가 무너질 경우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기업ㆍ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이러한 경우 진보적인 규제 시스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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