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동부그룹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24일 대우일렉 매각 실무자의 말이다.

지난 7년 동안 다섯 차례나 거의 될 듯한 딜이 번번이 무산됐으니 불안할 법하다. 그동안 채권단의 실무 담당자가 바뀌고 매각 자문단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대우일렉 내부이다.

매각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한계사업부를 매각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대우일렉 직원들의 이별 편지가 공개돼 많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대우일렉은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탱크주의'를 내걸고 국내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옛 대우전자의 후신이다. 옛 대우전자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서 한 때 국내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했다.

그러나 대우일렉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대우사태'로 1999년 그룹에서 분리돼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반도체 등 비주력사업은 매각하고 사업구조를 TV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 중심으로 재편했다. 2002년에 대우일렉으로 이름으로 바꾸고 구조조정과 해외법인 등을 재정비했다.

채권단은 2005년 말 매각 주간사를 선정하고 이듬해 4월 첫 매각 공고를 냈다. 인수의향서(LOI) 접수 결과 무려 국내외 19개 업체가 뛰어들 정도로 업계 관심이 컸다. 하지만, 예비입찰에서 8개사가 서류를 제출했고, 본입찰에는 입찰 자격을 부여받은 5개사만 참여했다.

채권단은 2006년 9월 인도의 비디오콘과 미국계 사모투자펀드(PEF)인 리플우드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양측은 기술유출, 헐값매각 논란 속에 MOU를 맺고 구체적인 가격 협상에 들어갔으나 정밀실사를 한 인수 측이 달러화 가치 하락 등을 반영해 이미 합의한 가격조정폭 5%외에 우발채무에 따른 조정폭 8%를 추가로 요구했다. 가격을 깎아달라는 말이다. 결국, 협상은 이듬해 1월 최종 결렬됐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1천500여명의 인력감축과 IS사업부 분리매각 등을 구조조정에 돌입한 후 2007년 말 재매각을 시작했다. 이듬해 모건스탠리PE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매각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모건스탠리PE는 인천공장 매각 등 구조조정안에 대한 대우일렉 노조의 반대 등을 들어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마침 2008년 하반기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채권단은 곧바로 차순위협상자로 리플우드를 선정했으나 리플우드 측이 금융위기 속에 자금을 제대로 끌어모으지 못해 또 협상에 실패했다.

결국, 대우일렉은 또다시 한계사업부를 정리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대우일렉을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채권단은 2009년 말 매각 작업을 재개했고 이듬해 4월 이란계 가전업체인 엔텍합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마침 미국이 대이란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우리 정부도 눈치를 봐야 했고 엔텍합도 우발채무 가능성을 들어 가격 할인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이번에도 매각에 실패하면 사실상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우발채무에 대해 예치금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에 합의했으나 엔텍합 측이 2011년 5월까지 대금 결제를 차일피일 미뤘다. 또다시 매각은 실패했고 엔텍합과 이행보증금 반환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올해 다시 매각을 개시했다.

국내 M&A 업계에서는 대우일렉 매각이 M&A 연구의 중요 사례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내 IB의 한 관계자는 "만약 동부그룹이 인수대금을 완납한다면 대우일렉 M&A는 국내 시장에 상당한 연구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라며 "협상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됐고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속출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M&A가 끝난 후에도 대우일렉과 채권단, 자문사에는 뭐가 남았는지 매각 시점은 적절했는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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