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경제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기존의 틀로는 해석하기에 복잡한 현상들이 흔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대내외 경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든지 높다라는 점이다. 그러한 '높다(高)'가 좋다는 의미를 가지면 다행인데, 대부분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이에 세간에서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다섯 가지 '높음'(5高) 인 고금리(Higher interest rate), 고환율(Higher exchange rate), 고물가(Higher price), 높은 지정학적 리스크(Higher geopolitical risk), 높은 무역장벽(Higher barriers to trade)의 본질과 영향을 살펴보았다.
첫째, 고금리가 여전히 내수 회복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민간 부채가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은 기존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졌다. 가계만 보더라도 통계청의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서 부채를 보유한 가구 비율이 62.1%나 된다. 또한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중앙값(median)은 7천만 원으로 우리 가구들의 평균적인 부채 수준이 낮지 않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가계가 새로운 신용을 융통하여 소비를 확대할 수는 없다. 또한 부채를 보유하지 않은 가구들도 금리가 높을수록 현재의 지출을 줄이고 미래를 위한 저축을 늘리는 시간선호의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소비시장은 회복되기 어렵다. 비슷한 이유로 기업의 입장에서도 투자가 살아나기 어렵다. 자기 자본으로 투자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직접금융이나 간접금융을 통해 투자금을 충당하는데, 고금리가 여전히 기업 부문의 자금순환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금리 수준이 낮아져야 내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 한국은행을 비롯하여 대부분 중앙은행들이 쳐다보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생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변덕스럽게 바뀌고 있어, 국내 금리 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 최근 고환율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 4월 중순 지정학적 리스크로 장중 1,400원 선을 넘었다가 지금은 다소 안정되어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고환율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본다면,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 우선 환율이 상승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직 4월 수입물가 통계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수입물가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수입물가 상승이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에 주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반감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환율 상승 폭이 크지 않다면 생각보다 그 충격은 미미할 수도 있다. 다른 부정적 영향으로는 대외신인도의 하락을 들 수 있는데, 사실 원화가 혼자 약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요 통화들도 모두 달러화에 대해 약세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 또한 세간에서는 자금의 유출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일부 단기투자 자금은 환율 급변동으로 한국 시장을 떠날 수는 있지만, 중장기 투자자금은 지금 한국 시장을 이탈하면 큰 환 손실을 입는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뉴스를 통해 숫자로 각인되는 고환율의 체감적 충격과 실제의 부정적 영향에는 큰 괴리가 있다.
셋째, 고물가의 그림자가 한국 경제에 어둠을 드리우는 것은 분명하다. 물가 상승 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올해 1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이 전기대비 0.8%로 작년 4분기의 0.2%에서 반등한 점이다. 그러나 이는 가계의 구매력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상당 부분 소비심리가 받쳐준 것에 기인한다. 실제 소비자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4월 100.7포인트로 기준치 100포인트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심리지수라는 것은 전국 도시 2천500가구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심리를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경제 상황에 변화가 있으면 언제든 부정적 신호로 바뀔 수 있다. 지금 소비심리가 좋은 것은 가계들이 작년의 저성장(2023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1.4%로 1960년 이후 63년 동안 역대 다섯 번째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을 생각해 볼 때, 올해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심리에도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삶이 팍팍해진다면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고 결국 가계는 지갑을 닫게 될 수 있다.
넷째, 높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중요한 요인으로 봐야 한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깨고 전기대비 1.3%라는 상당히 좋은 실적을 기록했기에, 대다수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할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는 것은 2분기에 벌어진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영된 경제지표가 집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환율과 물가 불안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유인이 낮아지고 있다. 잘못하면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금리 인하가 지연된다면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기 어렵고, 견조한 경제 성장세를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거의 해마다 해외에서 산발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요인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점과 최근 중동 지역의 혼란이 지속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당 기간 한국 경제의 회복을 억누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째, 높은 무역장벽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시작된 대중국 규제 정책은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로 계승·확산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바이든도 트럼프도 경쟁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대중국 수입관세를 현재의 약 20% 수준에서 60%까지 올리겠다고 주장한 것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철강, 알루미늄 등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 조사를 시작했다. 2019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 조치는 국제 교역의 위축과 세계 경제 성장의 둔화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표면적으로야 미국 정부의 입장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확고히 하는 디리스킹(derisking)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안에 숨은 뜻은 중국을 시장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이는 결국 국제 교역 시장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더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수출이 경제를 이끌고 가는 한국에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4월 25일에 발표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전기대비 1.3%)은 시장의 예상치보다 좋게 나왔다. 그 정도의 성장 속도면 주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2024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대 초반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언급되는 다섯 가지 고(高)의 불확실성 리스크가 해소되지 못한다면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불황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왜냐하면, 향후 성장력을 결정짓는 기업투자가 여전히 침체 중이고 수출도 반도체 등을 제외하면 아직 뚜렷한 회복 기조에 들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여전히 경제 펀더멘틀의 레질런스(resilience, 회복력)는 취약하다. 따라서 정부도 민간도 한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 요인들을 주시하면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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