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그런 때가 있었다. 시장의 위기 국면을 잠재우는 한방이 필요한 순간. 한미 통화스와프 발표에 그동안 치솟았던 달러-원 환율 곡선이 급격하게 꺾였던 2008년 10월 30일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증시가 급락하면서 달러-원 환율이 1,495.00원까지 급등해 외환당국의 방어선도 위태로웠던 그해 10월, 300억달러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나오면서 달러-원 환율은 하루 만에 177원 폭락했다.
물론 이듬해인 2009년 3월에 환율이 1,597원까지 튀어 오르기는 했지만 통화스와프 체결은 환율 급등세에 확실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왔던 2020년 3월에 한국은행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60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을 때도 달러-원 환율은 40원 가까이 급락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다시 미국에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를 꺼내 들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3천500억달러 규모의 막대한 대미 투자 논의가 지속되면서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강하다. 유럽연합(EU), 영국, 스위스, 캐나다, 일본 같은 기축통화국 위주로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돼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 중심의 통화스와프 명단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환영할만한 소식이라 할 수 있다.
통화스와프 체결이 주는 시장 안정의 심리적 효과는 분명하다.
아울러 앞으로의 시장 안정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우리 외환당국은 미국과의 환율 협의에서도 시장 안정에 무게를 실었다.
이날 발표된 한미 재무당국 간 환율정책 합의 발표문에도 "한미 재무당국은 외환시장 상황 및 안정(Stability)을 모니터링하고, 상호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지속된 노력의 하나로 투명한 환율 정책과 이행의 중요성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당국은 이 문장 속에 '안정'을 포함하는 안을 강조한 것으로 전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측 요청으로 같이 외환시장 안정을 모니터링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향후 문제가 생겼을 때 이번 합의가 안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의할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괄적으로 모든 시장 안정과 관련된 협업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대미 투자 관련 시장 안정 수단이 절실해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3천500억달러가 바로 빠져나간다면 달러-원 환율은 여기(1,400원선 부근) 있으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과거 사례를 보면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의 약효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통화스와프 만기는 통상 6개월을 기본으로 조금씩 연장되는 수준이다. 통화스와프가 체결된다 해도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 짧다.
처음에 체결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환율이 반짝 반응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셈이다.
통화스와프 자금을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조심스럽다.
한 베테랑 시장 관계자는 "통화스와프 자금은 중앙은행끼리 빌려주는 자금이지만 실제로 쓰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위기 국면에 긴급 지원되는 처방인데 실제로 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통화스와프 자금을 빌리는 금융기관이 있으면 달러 유동성이 부족할 위험이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유동성이 마르는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쓰지 않을 도리가 없는 측면도 있다. 무역결제 자금 등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통화스와프가 지원될 때도 있다. 과거 한중 통화스와프가 무역결제 자금으로 지원된 바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크레디트 한도가 차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끌어다 대출에 나서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통화스와프 자금 대출은 비용으로 인식된다.
통화스와프 자금은 경쟁입찰을 통해 금융기관들이 원화 국채를 담보로 제공하고 자금을 빌린다.
이처럼 외화자금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차원에서 안정을 도모할 수 있지만 통화스와프 자금에 따른 외환시장 영향은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방패마저 갖추지 못할 경우 대미 투자의 리스크는 상당하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에 따른 환율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짚어보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통화스와프 없이 직접 투자할 경우 즉각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외환위기 촉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과거 달러-원 환율이 위기 때 달러 유동성 부족으로 단기에 100원 이상 급등한 바 있다.
통화스와프 체결 후에 직접 투자를 하더라도 부작용은 크다. 단기 외환시장 패닉은 막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 훼손이라는 후유증이 남을 것이라고 봤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통화스와프 체결과 대출, 보증 중심의 투자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로 꼽혔다.
무제한까지는 아닌, 한도를 둔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된다 해도 대규모 대미 투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은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만약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되면 긍정적인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통화스와프가 만병통치약이나 마법 지팡이가 될 수는 없다.
대미투자의 형태가 직접 투자로 이뤄진다면 결국 시장은 또 다시 변동성의 파도를 넘어야 한다.
통화스와프 논란은 우리 외환시장이 아직 대규모의 자본 유출입을 감내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반영한다. 앞으로 원화 국제화와 24시가 개장을 위해 시장을 키우고,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통화스와프 자금을 받아 투자 지원 용도로 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미국에서 찍어서 빌려준 달러로 미국에 투자하는 형식이 된다.
만약 이런 형태가 성사되면 색다른 대미투자의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통화스와프 계약의 본래 목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통화스와프는 대미투자 자금과 별개의 시장 안정 수단이다.
특히 이는 환율을 끌어내리거나 투자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돈을 전부 써야 할 정도로 유동성이 부족한 위기 상황이 없도록 하기 위해 빌리는 자금이다. 즉, 만에 하나 빌리더라도 거의 안 써야 우리나라 대외신인도에 유리한 마이너스통장이라 할 수 있다. (경제부 시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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